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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씨는 원래 도시의 번화한 길을 지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회색 정장과 흰색 셔츠를 입고 주름이 막 가기 시작한 술 달린 검은 구두로 또각또각 빠른 소리를 내며 휴지 조각이 흩날리는 보도를 걷고 있었습니다. 쥐씨는 해가 방금 지고 난 짙푸른 하늘도 가게들의 빨갛고 노란 빛의 간판의 불들도 아직 모든 걸 어슴츠레하게만 비추고 있는 저녁 길의 어지럽게 얽히어 지나가는 다리 사이로 작은 생쥐 한 마리가 재빠르게 보도를 가로지르는 것을 보았습니다. 거짓말 같은 광경에 눈을 비비던 그는 다른 사람에게 말하기에는 어리석은 생각이지만 마음 속으로는 얼마든지 크게 말할 수 있는 그런 생각을 하나 했습니다. ‘저 생쥐는 분명히 이 길에 바쁘게 걷고 있던 사람들 중 한 명이 갑자기 스르륵 쥐로 변해 버린 것일 거야. 그렇다고 해도 옆에 있는 누구 하나 알아채지 못할 테니까’. 혼자서 해 낸 생각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몇 발자국을 더 내딛던 그는 갑자기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듯 어지럼증을 느끼면서 순식간에 작은 회색 쥐로 변해 버렸습니다. 혼란스러움을 되새길 여유도 없이 쥐씨는 쏟아지는 발걸음들을 피해 본능적으로 길 가의 하수구로 통하는 구멍으로 들어갔습니다. 얼굴을 살짝 내밀고 거리를 지나던 사람들을 살펴보았지만, 아무도 쥐씨가 사라진 것을 아는 듯 보이지 않았습니다. 바로 조금 전에 쥐씨가 생각해 내었던 바로 그 생각처럼 말이죠. ![]() * * * 쥐씨는 이제는 더 어두워 진 거리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가게들이 내는 불빛은 밤의 힘을 받아 사람들의 얼굴을 더 또렷하게 보이게 했지만 하늘의 빛이 까맣게 사라져 버린 이상 무릎 아래로는 이제 아무것도 보이질 않게 되었습니다. ‘하긴 내가 보인다고 해도 나를 도와줄 사람은 없구나’ 현실을 깨달은 쥐씨는 순순히 기대를 접고, 자신이 피한 하수구의 내부를 둘러 보았습니다. 물이 내려가는 중앙의 깊은 구멍을 내려다 보던 쥐씨는 철사 조각이 숭숭 튀어나온 벽을 타고 내려갔습니다. 평평하게 물이 흘러가는 바닥에 닿은 쥐씨는 가장자리를 따라 만들어진 공간에 조그만 점들이 둘씩 쌍으로 반짝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쥐씨는 그것이 곧 다른 쥐들의 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다른 쥐들도 쥐씨를 알아 보고 주변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이제 어떻게 하죠? 무슨 대책이라도 세워들 놓으셨습니까?’ 쥐씨는 그들에게 물었습니다. 그러나 모여든 쥐들은 고개를 으쓱하거나 소극적인 태도로 몇 마디 중얼거릴 뿐이었습니다. 그 중 동그란 안경을 낀 뚱뚱한 쥐 하나가 말했습니다. ‘나는 회계사요. 아니 회계사였지. 이제는 쥐일 뿐이니까, 계획이나 대책이 무슨 필요가 있겠소? 우리는 그저 옛날 이야기나 하고 있을 뿐이오.’ 회계사 쥐는 쥐씨가 오기 전까지 다른 쥐들 앞에서 하고 있었던 듯한 이야기를 계속 이어서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그 때 밤 늦게까지 사무실에서 일하다가 그만 곯아 떨어져서 자고 있는데, 도둑이 아무도 없는 줄 알고 몰래 들어온 거에요.…’ 회계사 쥐의 입담은 그런대로 들을 만한 것이었습니다. 몇 시간을 회계사 쥐나 또 다른 쥐들이 내키는 데로 들려주는 옛날 이야기를 듣고 있던 쥐씨는 마음이 답답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은 나중에 듣기로 하자. 어차피 나에게 내일의 의무 따위는 더 이상 없다면, 나는 세상 구경이나 먼저 해야겠다’ 한 밤중이 깊어져 이제 사람도 별로 없어진 길로 쥐씨는 다시 올라왔습니다. 교외로 나가는 마지막 버스의 문이 열리자, 쥐씨는 얼른 올라탔습니다. * * * 쥐씨는 교외에서 또 더 한적한 시골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한참을 걸었습니다. 새벽이 지나고 세상이 밝아졌지만 길에 사람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습니다. 쥐씨는 너무나 오랜 만에 사람들이 가득찬 도시를 벗어난 것이라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하늘에는 둥글둥글한 큼직한 구름 몇 조각만 산만하게 흩어져 있었고, 바람이 들의 긴 풀을 흔드는 소리가 따뜻한 숨소리처럼 들려왔습니다. 그 때 좁은 길 저쪽에서 일하러 나가는 동네 사람 몇몇이 나타났습니다. 쥐씨는 사람들을 피해 들판의 안쪽으로 더 깊이 들어갔습니다. 쥐씨의 키보다 조금 더 큰 돌들과, 까마득하게 긴 풀들 틈새로 쥐씨가 다닐만한 길들은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아무런 계획 없이 그런 길들을 따라 가던 쥐씨는 키가 큰 꽃들이 한 가득 피어 있는 들의 가운데에 도달했습니다. 길쭉한 줄기가 멀뚱히 솟은 끝에는 꽃잎이 겹겹이 난 큼직한 꽃이 하나씩 피어 있고 갈래가 죽죽 찢어진 이파리들이 줄기의 밑부분에 자라 있었습니다. 꽃들은 쥐씨를 주목하고는 까르륵 거리며 장난을 걸었습니다. 쥐씨는 수다스러운 꽃들의 질문 공세에 이것 저것 자신이 겪은 일에 대해 대답했습니다. 꽃들은 막상 쥐씨의 대답에 별다른 관심이 없어 보였으나 질문은 끊이지 않고 쏟아 졌습니다. 꽃들은 또 자신들의 무수한 꽃잎을 조금씩 떨어 작은 침대를 만들었습니다. 쥐씨는 그 위에 올라가 누웠습니다. 꽃과 풀 이파리 사이로 조각난 하늘이 푸른 빛으로 제각각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한 참을 그렇게 꽃들과 장난 치던 쥐씨는 어느덧 꽃들이 같은 질문을 되풀이 하고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쥐씨는 일어나서 이제 또 길을 가야겠다고 꽃들에게 말했습니다. 그러자 키가 큰 꽃들은 갑자기 화를 내며 성내는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당황한 쥐씨는 ‘어엇, 미안해. 미안해…’ 라고 손을 젓다가 그냥 냅다 들의 저편으로 도망갔습니다. ![]() * * * 땀을 뻘뻘 흘리며 뛰어가는 쥐씨는 문득 옆에 휘리릭 무언가 튀어오르는 걸 느껴 돌아 봤습니다. 쥐씨의 옆에는 연한 녹색의 여치가 열심히 콩콩 뛰고 있었습니다. ‘잠깐만.. 헉헉.. 잠깐..’ 쥐씨는 동그란 눈을 한 여치를 세웠습니다. ‘왜 나를 따라 뛰는 거지?’ 쥐씨가 묻자 여치는 손을 저으며 변명했습니다. ‘나는 그냥 내가 가던 길을 가고 있었어.' 쥐씨는 의심이 들었습니다. ‘거기가 어딘데?’ 여치는 머뭇거리다가 말했습니다. ‘꿀밤 나무 언덕..’ ‘꿀밤 나무 언덕.. 나도 거기에 같이 가자.’ ‘어.. 너는 어디에 가고 있었는데? 너도 어디 가려는 데가 있었던 것 아니야?’ 쥐씨가 한숨을 쉬며 대답했습니다. ‘휴, 아니. 나는 저 장대같이 큰 꽃들이 화를 내어서 도망치는 중이었어’ 그러자 여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습니다. ‘꽃들이 화를 내면 도망가는 게 상책이지.’ 쥐씨는 여치가 공감해주자 뭔가 더 믿음직스러웠습니다. 쥐씨는 여치에게 도시에서의 일들을 들려 주었습니다. 여치는 쥐씨에게 노란꽃에게 크게 혼난 일을 소근소근 이야기했습니다. ‘꿀밤 나무 언덕은 이쪽으로 가는 거야?’ 그러자 여치가 갑자기 당황한 표정을 짓더니 말했습니다. ‘어.. 그런데 나 잠시 들를 데가 있어. 네가 먼저 가 있을래?’ 여치는 쥐씨에게 꿀밤 나무 언덕에 가는 방법을 설명해주고 들판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 * * 쥐씨는 여치의 설명을 따라 걷기 시작했습니다. 여치의 설명대로 큰 길이 나오자, 쥐씨는 먼지가 날리는 큰 길을 따라 걸어갔습니다. 큰 길에는 가끔 차들이 지나가기도 했습니다. 쥐씨는 곧 여치가 말한 나무 간판을 발견하고 샛길로 접어 들었습니다. 그런데 여치의 말을 기억하며 샛길의 끝까지 간 쥐씨는 꿀밤 나무가 아닌 허름한 창고를 발견할 뿐이었습니다. 허름한 창고에는 타이어들이 쌓여 있었습니다. 창고 앞 마당에는 낡은 타이어가 혼자 덩그마니 버려져 있었습니다. 어리둥절하게 기웃거리는 쥐씨에게 낡은 타이어가 퉁명스럽게 말했습니다. ‘여기에는 먹을 것은 없는데. 저쪽 동네에 가면 인가가 좀 있지.’ ‘나는 꿀밤 나무 언덕을 찾아서 여치가 가르쳐 준대로 길을 따라 왔는걸. 꿀밤 나무 언덕에서 여치랑 만나기로 했는데…’ ‘글쎄, 꿀밤 나무 언덕이라고는 들어 본 적이 없는 걸.’ 쥐씨는 울상이 되었습니다. 낡은 타이어가 잠시 후 말했습니다. ‘그러면 우리 타이어들이 높이 산을 만들어 줄 테니까, 높은 곳에 올라가서 그런 곳이 있는지 한 번 살펴보도록 해’ 낡은 타이어가 타이어들에게 쥐씨의 사정을 설명하자, 타이어들은 굴러와서 높이 쌓였습니다. 쥐씨는 타이어들을 기어 올라가 가장 높은 꼭대기까지 올라갔습니다. 쥐씨는 자신이 꽃들과 여치를 만났던 들판이 오른쪽 멀리에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왼쪽에는 산자락 밑으로 도시로 향하는 기찻길이 가로지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걸어온 큰 길의 반대 방향의 끝에 작은 언덕이 보였습니다. 그 언덕 위에 꿀밤 나무 같기도 한 나무가 보이는 듯 했습니다. 쥐씨는 다시 타이어 더미에서 내려왔습니다. ‘나는 길의 반대쪽으로 온 것 같아. 다시 저쪽의 언덕으로 가봐야겠어. 여치가 기다릴 거야.’ ‘글쎄.. 여치는 벌써 너를 잊었을걸. 차라리 여기서 좀 쉬지 그래. 내 옆구리에 난 구멍으로 들어오면 조용하게 쉴 수가 있을 텐데…’ 타이어는 옆구리에 딱 쥐씨가 들어갈 만큼 헤어져 난 구멍을 가리켰습니다. 쥐씨는 고개를 흔들며 말했습니다. ‘고마워. 그런데 나는 꿀밤 나무 언덕에 가야겠어. 안녕..’. 타이어들은 꽃들처럼 화를 내지 않았지만, 곧 바로 침묵했습니다. 쓸쓸하고 건조한 바람이 내는 작은 소리 외에는 무척 조용하게 된 창고를 쥐씨는 살금살금 떠났습니다. * * * 다시 큰 길을 되돌아 반대쪽으로 헉헉거리고 뛰어가던 쥐씨는 왠지 여치가 자기를 따라 뛰는 것은 아닐까 옆을 흘끔흘끔 돌아 보았습니다. 그러나 여치는 보이지 않고, 길 가에 핀 강아지풀들만 하늘하늘 흔들거리고 있었습니다. 쥐씨는 언덕으로 향해 난 작은 길로 들어섰습니다. 언덕을 오르며 쥐씨는 꿀밤 나무가 어디에 있는지 두리번거렸습니다. 그러나 키 작은 덤불 나무들이 듬성듬성 있을 뿐 꿀밤 나무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언덕의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갔지만 그 곳에도 꿀밤 나무는 없었습니다. 쥐씨는 여기저기 돌아보다 언덕 너머 아래쪽에 큰 나무가 작은 연못 옆에 자라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쥐씨는 혹시나 해서 그곳으로 내려 갔습니다. 연못 옆의 나무는 꿀밤 나무가 아니라 빨간 작은 열매들이 열려 있는 열매 나무 였습니다. 초록색 연못에는 나무에서 떨어진 이파리들이 떠 다니고 있었습니다. 쥐씨는 연못 옆의 작은 바위 위에 올라가 혹시 여치가 와 있을까 두리번거렸습니다. 여치는 보이지 않고, 멀리 보이는 하늘에는 구름들이 몽글몽글 맺혀 있었습니다. 그 때 우거진 열매 나무 속에서 갈색 깃털을 가지고 목에 주홍색 무늬가 있는 새가 짧고 작게 노래하면서 쥐씨를 불렀습니다. 새는 열매 나무의 빨간 열매를 따다가 쥐씨에게 주었습니다. 쥐씨는 바위 위에 앉아서 열매를 먹으며 여치는 어디에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새가 또 열매를 따서 쥐씨에게 날라 왔습니다. 쥐씨는 열매를 배부르게 먹었습니다. 배가 부른 쥐씨는 바위 위에서 새가 노래하는 어렴풋한 소리를 들으며 그만 잠이 들어 버렸습니다. ![]() * * * 한참 시간이 지나고 다시 새 소리 같은 것에 잠이 깬 쥐씨는 잠시 모든 기억들이 헷갈렸습니다. 이제 붉은 물이 들어가는 하늘을 보면서 쥐씨는 도시에서 이곳까지 오며 만났던 쥐들이며 꽃, 여치, 타이어와 주홍색 무늬가 있는 새를 기억해 내었습니다. 다시 한 숨을 쉬며 잠시 눈을 감은 쥐씨의 머리를 누군가 부드럽게 쓸어 넘겼습니다. 깜짝 놀라 눈을 뜨고 쳐다본 그곳에는 미소를 머금은 아가씨가 내려다 보고 있었습니다. 쥐씨는 곧 자신이 흰색 셔츠와 회색 정장을 입고 넥타이를 맨 본래 모습의 사람이 되어 누워 있는 것을 알아챘습니다. 아가씨는 빨간 열매를 한 줌 쥔 손을 내밀었습니다. 아가씨의 목에는 주홍색 스카프가 매어져 있고 그녀의 옆구리에 낀 바구니에는 키가 큰 꽃들이 몇 다발 들어 있었습니다. 놀라운 표정으로 아가씨를 바라보며 몸을 일으킨 쥐씨의 발치에는 여치 몇 마리가 튀어 올랐습니다. 하늘에는 검푸른 물감이 붉게 남아 있는 빛을 점점 덮어가고 있었고 멀리서는 도시로 향하는 기차의 기적 소리가 울리듯 들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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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등록된 덧글
레오펠릭스// 읽어주셔서..by Rudy at 07/09 굉장히 흥미롭게 봤습니다.. by 레오펠릭스 at 07/08 통제할 장치가 없다는 사.. by Rudy at 06/23 걱정하시는 것처럼 직접.. by Jeff at 06/22 jeff// 땡큐요~ by Rudy at 05/11 잘 읽고 있습니다 ^^ by jeff at 05/11 ellouin// 3편까지 있을 .. by Rudy at 05/11 링크신고합니다.^^ by ellouin at 05/11 jeff// 다음 편도 곧 쓸.. by Rudy at 05/08 다음 편 기대합니다. by jeff at 05/08 최근 등록된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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