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적 의사결정의 과정이 가장 실용적인 결과를 생산하려면 높은 수준의 시민의 소양이 필요하다. 과학적 지식은 산업화 시대에서 고도의 전문가의 영역으로 생각되기 쉬우나, 과학적 지식의 성격과 내용의 기본 얼개를 이해한다는 의미의 과학적 소양은 민주사회의 시민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자질이다. 시민은 끊임없이 건강의 문제, 기술과 산업의 문제, 경제의 문제에 대한 정치적이고 행정적인 결정을 내려야 하는데, 시민들의 과학적 소양이 부족한 경우 사회의 당면한 문제들은 정치와 사상, 수사와 선동의 영역 안에서만 맴돌게 된다. 사안에 대한 과학적 이해는 사회 내에 존재할 수밖에 없는 사상의 다양한 스펙트럼 가운데 누구든지 동의하는 출발점을 제공해 준다. 서로 다른 가치관과 이해관계의 사람들 사이의 갈등은 마치 서로 다른 언어로 대화하는 것이라면, 사안에 대한 과학적 이해는 모두가 이해하는 하나의 언어의 틀을 제공하는 것이다. 어떤 가치관과 선험적 판단이 옳은 것인지 아무도 증명할 수 없지만, 만약 그것이 진리에 가까운 것이라면 그 가치관에 근거한 전략과 판단은 대체로 과학적인 정보로 번역될 수 있다. 물론, 모든 미세한 뉘앙스와 개인적 경험이 모두 과학적인 정보로 번역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정치적 의사결정의 기반을 두기에는 충분하다. 과학적 정보는 마치 운동경기의 심판관처럼, 사회가 당면한 갈등이 물리적 충돌이 아닌 감당할 만한 경쟁의 수준에 머무를 수 있게 조정하는 제도로 기능을 할 수 있다.
시민의 과학적 소양이란 단순히 시민들이 과학의 과목을 많이 배우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시민이 다음과 같은 능력을 갖추는 것을 의미한다.
1. 개인에 관련된 의사 결정에서 과학적일 것
2. 과학적 정보에 기반을 두고 정치적 의사결정을 할 수 있을 것
3. 정치적 갈등이 생길 경우 과학적인 방식으로 해결을 노력하는 것
시민교육의 문제를 풀어가려면 물론 이 세 가지가 어떤 정도로 그리고 어떤 모습으로 필요한 건지 구체적인 항목들이 구성되어야 하겠지만, 이 글의 목표는 누구를 계몽하려는 것이라기보다 그저 현재를 잠시 진단해 보려는 것이니만큼 일단은 열린 문제로 남겨둔다. 다만, 현재를 진단한다는 의미에서, 최근의 미국 소고기 수입과 광우병을 둘러싼 논란 및 정치 행위를 시민의 과학적 소양과 관련해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사태에서 미국 소고기 수입 문제와 광우병에 관해 많은 루머가 양산되었고, 또 개인들이 치밀하게 과학적이라기보다는 제한되거나 왜곡된 정보에 쉽게 호도된다는 것이 드러났다. 그런데 눈에 띄는 것은 루머나 선동적으로 과장된 정보들은 대체로 과학의 형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비록 잘못된 수치와 불완전한 해석이 떠돌았음에도, 사람들의 마음을 뒤흔든 것은 측정된 값과 확률과 인과관계였다. 다만, 많은 이들에게 부족했던 것은, 과학이란 형태로 포장된 요약된 정보를 접했을 때에는 반드시 출처(reference)를 통해 재확인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면에서의 과학적 소양이었다. 과학적 지식은 경험 증거와 그 전문적 내용을 이해하는 다른 과학자들의 보증을 통해 공인된다. 따라서, 과학적 지식을 접할 때 출처 및 보증하는 기관의 권위를 확인하는 것은 그 결론을 이해하는 것과 동시에 매우 중요하며, 과학적 소양을 갖춘 사람이라면 당연히 갖게 되는 일종의 태도가 된다. 물론 나는 여기서 일반 시민들이 어려운 논문을 찾아보려 하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적이라는 것이 아니다. "근거나 설명은 삭제된 채 과학의 포장을 입은 정보를 접했을 때 자동적인 의심을 품고 정보제공자에게 근거를 요구하는" 그런 정도의 과학적 소양 부족에 대한 아쉬움을 말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아쉬움이지 비난은 아니며, 더 큰 비난은 "남에게 전달할 때는 혹시 모르니 더 철저하게 근거를 검토하는" 정보제공자들에게 돌아가야 할 것이며, 여기서 개인보다 언론과 정치집단에 향한 것은 더 큰 무게를 싣고 싶다. 물론 언론과 정치집단의 과학적 소양은 우리 사회의 과학적 소양의 일부이기도 하다. 그리고 나의 비난은 정부의 정책에 비판적인 활동가들에 보다는, 정책적 결정을 과학적으로 접근하고 그에 관해 과학적으로 시민과 의사소통해야 하는 정부의 과학적 소양의 부족함에 대해 가장 큰 비중을 둔다. 정부라면 그 사회의 전문성을 아우른 가장 권위를 가진 의사 결정 집단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또한 이 정부의 부족함 역시 "그들의 문제" 가 아닌 "우리 사회의 부족함"이라는 틀을 벗어나서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마지막으로, 어떤 소수의 과학자는 (혹은 과학주의자들은) 증명된 과학의 위대함을 들어 증명되지 못한 주장에 그저 면박만을 주곤 하는데, 그 역시 높은 수준의 시민의 과학적 소양과는 거리가 멀다. 면박이나 구박은 과학이라는 언어에 존재하지 않고, 반박이라는 것이 존재할 뿐이다. 반박은 반박당한 상대와 그 주장을 바보나 천치로 만들어 버리지 않고, 그들 역시 과학자로 존중하는 담화이다. 과학은 끼어드는 모든 사람을 과학자로 대접하고 누구에게나 친절하게 (반박의 근거를 들어) 설명한다. 이런 과학의 말하는 법이 몸에 배지 않은 과학자가 있다면, 이 사람은 과학자이지만 과학적 소양을 더 길러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의 과학자 집단 역시 친절이라는 과학의 고급 언어를 구사하고 있는지, 아니면 아직도 과학의 언어는 과학자들에게도 외국어처럼 어색하지는 않은지 스스로 점검해 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