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선전에 참여한 것은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는 한 학년 아래의 여동생이 전교 학생회 부회장 후보로 출마했기 때문이었다. 홍보라기 보다는 선전 내지 선동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동생의 선거 운동, 그리고 동생이 출마한 당시 우리 학교의 선거전이 전교조 세대에 일어난 고교 학생운동의 한 장면을 장식할 일련의 사건들의 도입부라고 할 수 있어서이다. 퇴색한 기억이고, 주변부에서 겪은 일이니 만큼, 역사라기 보다는 사적인 추억이 될 것이다.
동생은 보이쉬한 짧은 머리에 똘똘하고 야무진 얼굴 낭랑한 목소리를 가진 남녀공학의 1학년 여학생이었다. 나의 부추김과 측근의 부추김에 동생은 다가오는 2학기 부터 1년동안 부회장을 맡을 1학년생으로 출마했다. 2학년이 회장을, 1학년이 부회장을 맞고 2학년 회장이 3학년 1학기가 될 때까지 임기를 맡는 제도 였다. 80년대 후반의 남녀공학 고등학교의 학생회는 아직 남학생 일색이기 일쑤였으나, 아무리 봐도 똘똘한 동생은 정녕 1 학년의 대표, 학생회 부회장 감이었다.
동생의 선거 운동 본부는 열명 남짓한 측근으로 이루어졌다. 동생의 어릴적 친구들이자 중학교 동창들, 동생이 활동하는 풍물반의 친구들, 그리고 나 이렇게 이루어져있었다. 동생의 중학교 동창들은 그 학교의 '과학반'이라는 동아리 출신들이었는데, 이 과학반은 아직은 시작하지 않았지만 곧 전교조의 핵심을 꾸릴 교사들이 똘똘한 학생들을 추려 모아서, '참교육'을 하는 그런 모임이었다. 그 교사들은 아이들이 여러가지 생생한 과학 프로젝트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고, 대체로 NL 계열의 대학 신입생 꺼리 정도의 책들을 읽도록 권했고, 운동가요 테입을 복사해 주었고, 당시에 아직 널리 보급되지 않은 PC를 구입해서 아이들이 컴퓨터에 대해 배울 기회를 주기도 했고, 의식화(?) 된 학생들이 쓴 교육현실에 대한 비판 시집 같은 걸 읽고 또 비슷하게 글을 쓰는 뭐 그런 활동들을 했다. 동생과 동생의 친구들 대부분은 일종의 새로운 지식을 담는 기회로 상당히 명랑하게 과학반 활동을 했고, 굉장히 창의적인 아이들이 되었다. 동생이 고등학교에서 가입한 풍물반은 우리 학교의 두 운동권 동아리 중 하나여서, 풍물반의 친구들 역시 운동권으로 분류되었다. 그리고 나는 동생과 다른 중학교를 다녔지만, 동생을 통해 같은 자료를 공유하는 바람에 독립적으로 의식화되어 버려서 내가 다닌 중학교의 (미래의) 전교조 교사들을 깜짝 놀래킨 (즉, 교육도 안시켰는데 이런 애가 있다니...이런) 그런 경력을 가지고 있었다. 즉, 동생을 중심으로 한 그룹은 사실 알 건 다 알지만, 어떤 범학교 조직에 속해있지 않고, 상당히 명랑한 동기를 가진 그런 아이들이었다. (아마 풍물반의 몇몇은 범학교 조직이나 성인 운동권 조직과 관련이 있었을 수도 있다.)
우리는 열성적으로 선거를 기획했다. 나는 동생의 마스코트를 만들고, 그것을 이용해 홍보전단과 포스터를 제작했다. 동생의 마스코트는 동생처럼 주근깨가 그려진 개미였다. 열심히 일하는 일개미 기호 1번 XXX! 뭐 이런 류의 구호도 만들었다. 음악에 재주있는 다른 친구는 어떤 노래를 개사해서 홍보용 노래를 만들었다. 진지하면서도 호소력있는 공약을 구상했는데 구체적인 내용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정치성도 없었고, 반항적이지도 않았고, 너무 거창하지도 않았고, 상당히 건설적인 그런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는 선거기간에 새벽같이 학교에 가, 등교하는 학생들을 상대로 구호를 외치고 홍보전단을 나누어 주었다. 아침 자율학습 시간과 점심시간에는 각 학급을 돌며 유세를 했다. 일단 교실에 들어서자말자 홍보 노래를 율동과 함께 부르고는, (남학생 반에서 이건 사실 상당히 쪽팔린 활동이었지만 동생의 친구들은 아주아주 용감했다) 동생은 낭랑하게 준비한 연설을 했다. 그런데 들뜬 어떤 학생들이 노래! 노래! 를 외치기 시작했다. 동생은 빼지 않고 이문세의 소녀를 무반주로 (당연히!) 주욱 뽑았다. 동생은 노래를 꽤 잘했다. 이 소문이 퍼지는 바람에 결국 동생은 모든 교실 유세에서 똑같은 노래를 해야 했다. 이 모든 것은 동생을 이번 선거의 스타로 만들었다.
동생의 경쟁 상대는 공교롭게도 나의 옆반 친구의 남동생이었다. 이 남학생은 키가 크고 인물이 준수한 아이였는데, 그 아이에겐 도움을 주는 친구들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많은 남학생들은 여학생이 학생회 임원이 된다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 어쩌면 여학생들도 마찬가지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두 부회장 후보의 언니/누나들이 2학년이라는 것은 묘한 상황을 가져 왔다. 1학년 학생들이야 서로 누구를 더 잘아느냐에 좌우되는 건 당연하지만, 2학년 학생들은 이번엔 과연 두 언니/누나들 중 누구와 더 친하냐가 중요한 관건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 동네 토박이였고, 상당수의 우리 학년 친구들은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언제 한 번은 같은 반 친구였던 아이들이었다. 대화는 이런 식이었다. 중학교에서 같은 반이던 남학생과 복도에서 마주친다. "야, 니 동생이 부회장 나온 걔라며? 기호 1번?" 그럴 경우 나는 당연하게, "어, 너 꼭 찍어, 알았지!!!!!" 뭐 그보다 더 강력하게 내가 아는 모든 아이들에게 동생을 찍을 것을 부탁했고, 그 아이들에게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들에게 동생을 찍으로 설득할 것 까지 당부했다. 결국 나중에 그 남학생 후보의 누나도 2학년 교실을 돌면서 앞에서.. "얘들아, 내 동생이 부회장 선거 나왔으니까 꼭 찍어줘~" 라고 설득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낯선이가 교실 앞에서 뜬금없이하는 부탁과 친한 친구가 "야, 꼭찍어~" 라고 점조직으로 하는 부탁 가운데서 고등학교라는 사회에 어떤 것이 더 설득력이 클 지는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동생은 특히 2,3학년 남학생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귀여운 1학년 여학생들이 교실에 들어와 노래도 하고 율동도 하고, 당시에는 게다가 보이쉬한 스타일이 인기도 많았던 것이다! 동생의 선거운동은 요란했고, 동생은 각종 유세(교실 유세, 방송 유세, 운동장 유세)에서도 훨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렇게 동생은 유력한 부회장 후보가 되었고, 선거는 거의 종반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렇다면 과연 선거 상으로는 더 중요한 회장 후보들의 선거 운동은 어떻게 전개되고 있었을까? 그것은 학교 규칙에 정해진 선거 운동 기간이 시작되기도 전에 벌써 학교를 들썩거리게 하고 있었다. 어느날 아침 등교한 전교생들은 다 운동장을 내다 보며 쑥덕이기 시작했다. 운동장에 꽉차도록 물을 이용해 또박또박 쓰여진 것은 어떤 2학년 남학생의 이름 이었다. 아이들은 누군가 무슨 장난을 하는 건지, 그리고 그 남학생이 도대체 누구인건지, 술렁거렸다. 그런데 이 일은 다음 날 아침에도 반복되었다. 그러다 어느날인가, 거기엔 후보의 기호번호가 붙어 버렸고, 학생들은 그게 바로 회장 후보의 출마한 박군의 홍보전임을 알게 되었다. 심심한 학교의 일상에서 이런 일은, 그야말로 아이들의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이었던 것이다.
회장 후보에 출마한 박군은 또다른 운동권 동아리인 교지편집부 출신이었다. 되짚어 생각해 보면, 이 교지편집부는 일종의 PD계열의 운동권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박군은 이미 골수 마르크스주의자였고, 상당한 입문과정을 이미 거친 운동권 학생이었다. 박군의 학생회장 선거 운동은 우리의 그것과는 아예 차원이 달랐다. 운동장에 이름 새기기 아이디어도 그랬지만, 박군의 홍보 포스터는 어느 대학교의 형 누나들이 마련해 준 것이었다. 박군이 운동장 선거 유세를 할 때는, 갑자기 4층 교실에서 부터 구호가 적혀진 4층 높이의 깃발이 주르르 내려왔다. 이 깃발은 물론 역시 대학생 형 누나들의 지원을 받은 것이었다. 보수적인 학생주임이 이런 유래없는 선거 운동에 대해 뒤늦게 선거법 위반이라며 삿대질을 했지만, 이미 목격한 아이들에겐 눈에 별이 반짝이고 흥분으로 가득찬 신나는 기억이었다. 게다가 박군은 비록 얼굴은 산도둑 같이 생겼지만 굵고 맑은 목소리를 가진 정말 뛰어난 연설가이기도 했다.
동생의 선거운동은 박군의 그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동생의 측근들은 일종의 이 사회에 역사적으로 어떤 부조리가 있었는지를 배운 정도로 의식화가 된 것이라면, 박군의 측근들은 아예 그 부조리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야 한다는 것까지 알고 있는 한 단계 더 앞선 친구들이었다. 이 두 그룹은 아무런 사전 조율 없이 독립적으로 선거에 뛰어들었고, 둘 다 유력한 후보가 되었다. 이무렵 박군 측에서 동생을 접촉해 왔다. 요약하자면 이런 제안이었다. "학생회가 제대로 운영되려면 선거 자체가 러닝메이트가 되어야 한다. 러닝메이트는 내년에 우리가 학생회가 되었을 때 관철하겠지만, 아예 운동 과정에서 우리가 러닝메이트임을 표방하는 것이 어떻겠느냐." 즉 학생들에게 부회장 후보인 동생과 회장 후보인 박군은 한 팀이므로 이 둘을 함께 찍어 달라고 홍보하자는 것이었다. 우리는 좋은 생각으로 여겨 찬성했고, 결국 선거에서 두 사람 다 당선 되었다. 일종의 정당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는데, 물론 당시 우리는 이 정당이 표방하는게 뭐가 되는 건지 전혀 아이디어가 없는 상태였다.
선거 운동을 하는 내내 우리의 목표는 오로지 당선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믿는 건 오직 동생이 가장 훌륭한 부회장 감이라는 사실이었다. 우리에게 이 선거는 사명감 보다는 즐거운 운동 경기였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아는 온갖 창의적이고 효과적인 방법들 - 시각적 효과들, 음악의 선동, 웅변술, 다단계 점조직, 이미지 만들어 내기, 연합의 시너지 효과 - 을 다 동원해서 목표를 달성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재주를 뽐낸 것이었다. 박군측의 재주는 우리와 차원이 달랐지만, 과연 박군의 마음속에는 어떤 것들이 들어있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이렇게 결정된 차기 학생회는 아직 2학기를 맞아 임기를 시작도 하기 전에 엄청난 일을 감당하게 된다....
(2편은: 선동의 추억 (2))
(3편은: 선동의 추억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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