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동의 추억 (2)
1편은 요기: 선동의 추억 (1)

선동의 추억 (2)

그 해 5월 말 경 전국 교직원 노동조합이 설립되었다. 그에 대해 처음 들은 것은 학교 선생님들이 무슨 말을 해서가 아니고, 티비와 신문에 들썩들썩 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티비와 신문에서는 교사는 성직이고 노동자가 아니라며 비난하다가 결국 불법으로 결론내리고 말았다. 전교조는 단식투쟁에 들어갔다. 즉 낮에는 수업을 하고, 밤에는 교무실에서 일종의 농성 같은 것을 하면서 단식중임을 알리는 그런 식이었다. 이쯤 되자, 우리는 어떤 선생님이 전교조에 가입했는지 파악을 할 수 있었다. 우리학교에는 무려 27명, 삼분의 일가량의 선생님이 전교조에 가입해 있었다. 이 선생님들 중, 평소에 정치평론을 많이 하는 몇명의 선생님들은 수업시간에 전교조와 관련해서 뭔가 코멘트를 하는 분들도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선생님은 아이들을 개입시키지 않으려는 작정으로 입을 다물고 계셨다. 정부와의 대립은 계속되었고, 단식농성은 교사들의 파업으로 이어졌다. 사실 이때 선생님들은 육체적으로 수업을 하기 힘든 상태가 되어 있기도 했다.

정부는 곧 극단적인 조치를 내리기로 하고, 파업교사들을 파면, 해직하겠다고 공표했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사실 전교조 교사들과 학생들 사이에서는 의사소통이 되고 있지 않았다. 교사들 입장에선 안그래도 불리한 대외 이미지에 학생들을 선동했다는 죄목까지 추가할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티비에서 파면을 떠들어 대는데, 우리학교는 학생들이 가장 좋아하는 30명 가까이나 되는 젊은 선생님들이 다 짤리게 생긴 것 같으니, 우리들은 패닉상태가 된 것이다. 

학생시위는 사실 내 의견이었다. 즉, 동생의 측근들 쪽에서 먼저 나온 제안이었다. 회장 후보 당선자 박군의 경우에도 비슷한 기획을 하고 있어서 우리는 선생님들의 파면을 반대하는 운동장 침묵시위를 해야한다고 결론을 내리고, 박군의 그룹과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날짜와 시간을 정했고, 시위의 방법을 정했다. 조직 방법은 간단했다. 각 학급에 연락책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연락책에게는 임무가 맡겨졌다. 00일 2교시가 끝난 후 운동장에서 침묵시위가 있다는 걸 자기반 아이들 입에서 입으로 알린다는 것, 절대 침묵 시위를 지킬 것, 운동장에서는 평소 조회 시간에 서는 각 학급의 자리대로 정렬할 것, 그리고 연락책은 2교시가 끝났을 때 교실 앞에 나와서 지금 시위가 시작되니 참가할 사람은 운동장으로 나오라는고 선전할 것. 침묵시위는 차기 학생회가 생각한 아이디어였지만, 엄연한 현 학생회가 임기 중이었기에 우리는 현 학생회를 접촉해서 대표성을 맡아 줄 것을 부탁했다. 당시 학생회장은 올빼미  안경을 쓴 모범생 3학년이었다. 학생회장은 고민하며 주저하다 그러겠다고 했다.그리고 3학년은 시위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만약 어떤 불이익이 생긴다면 3학년들에겐 치명적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드디어 디데이, 2교시가 곧 끝나려고 하고 있었다. 나는 이미 며칠 전에 우리반 반장 여학생에게 우리반의 시위 대열의 대표직을 맡아달라고 부탁을 했었다. 나는 당시 부반장이었고, 반장을 맡은 여학생은 나의 오랜 초등학교 시절부터의 친구 정양이었다. 이 친구는 활발하고 발표도 잘하고 목소리도 우렁차고 마음도 따뜻한 아이였다. 그렇지만 정양은 결국 고개를 저었다. 고지식한 성격탓에 며칠동안 심하게 고민한 정양은, 반장이라는 자신의 책임으로 볼때 시위나 수업거부를 주동할 수는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나는 그녀의 의견을 존중했다. 그리고 대신 내가 대표직을 맡기로 했다. 2교시가 끝나고 아이들이 서로 쳐다보고 눈치를 보고 있을 때, 나는 재빨리 교실 앞으로 나갔다. 

"얘들아. 할말이 있어. 너희들도 알다시피, 우리 선생님들, 그리고 우리 담임선생님 지금 파업중이시고 단식 중이시지."

우리 담임 선생님은 40살에 가까운 수학을 가르치는 여선생님으로, 당시 전교조 멤버중엔 상당히 노땅에 속했고, 따라서 존경을 한몸에 받는 분이셨다. 파업으로 인해, 담임 업무는 반장이나 나를 불러서 미니멈으로 전달하고 계셨고, 우린 나날이 수척해 가는 선생님을 지켜보고 있었다. 

"선생님들이 하시는 일에 대해 문교부가 위법이라고 하고 잘못이라고 해서 너희들도 혼란스러울 것이고, 나도 뭐가 맞는다고 딱 주장할 생각은 없어. 그런데 이것만은 분명하다고 생각하거든. 27명의 우리가 사랑하는 선생님들이 지금 파업하시고 단식하시는 이유는 "참교육"을 실행하겠다는 일념에서라는 거야. 바로 우리들을 위해서 지금 선생님들이 파업하시고 단식을 하시는 거라구. 너희들도 알다시피 우리 강제 자율학습이며 보충수업이며 새벽부터 밤늦게 까지 감옥에 갇힌 것처럼 살고 있고, 생생한 배움이 아닌 다 죽은 지식을 딱딱하게 암기만 하고 있는 것, 너희들도 뭔가 너무 잘못되고 있다고 느껴왔잖아? 선생님들께서 그걸 바꿔보시겠다는데 그래서 단체를 만들었는데 정부에서는 듣지도 않고 탄압만 하고 있어."

당시 전교조의 교사가 노동조합을 결성할 자유가 있다는 호소는 씨알도 안먹히고 있었다. 그래서 부각된 것은 "참교육"이었다. 나는 물론 교사에게 노동조합결사의 자유가 있음을 분명히 믿고 있었지만, 그 부분은 건드리지 않기로 했다.  

"무엇보다도, 이제 문교부에서 파업에 참가한 교사들을 다 파면하기로 했데. 선생님들이 우리를 위해서 하신 일 때문에 이제 짤리시게 됬어. 나는 우리가 이렇게 수업거부를 하고 시위를 한다고 해서 그 결과가 달라질 거라고 생각지는 않아. 하지만, 우리 선생님들에게 우리 마음을 보여드리지 않은채 선생님들을 이렇게 보낼 수는 없어. 정부가 선생님들을 파면하려고 하니, 우리는 선생님들을 파면하지 말라고 우리 의사를 표현하는 이것, 이것밖에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거든. 그러니 우리 선생님을 파면하지 말아달라고 전달하고 싶은 사람은 지금 운동장으로 나가자. 사랑하는 선생님들을 이대로 보낼 순 없잖아?"

감성을 자극한 내 선동은 성공적이 었고, 우리 반 아이들은 대부분 운동장으로 나가기 위해 일어섰다. 서너명이 남았다. 남은 아이들 중엔 여호와의 증인인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정치적 참여를 터부시하는 종교에 가르침 때문에 남아있었다. 그런데 반장인 정양은 나가지 않겠다고 했다. 정양은 남아있는 아이들을 위해서라고 했다. 그 순간엔 정양이 잘 이해되지 않았지만, 반장인 정양이 남아있었기에 남아 있는 아이들은 아마 소외감을 덜 느꼈을 것이다.

운동장에는 정말 많은 아이들이 나와있었다. 물론 각 학급의 시위 참여도는 연락책의 능력에 따라 달라지긴 했지만 80%정도의 아이들이 나와서 조회 대열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무릎을 꿇고 침묵시위를 한다는 지시대로 아이들은 조용히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날따라 분위기도 맞게 비가 추적추적 내려서 우리는 비를 쫄딱 맞고 있어야 했다.

그런데, 대표를 맞기로 한 3학년 학생회장이 한구석에서 차기 학생회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자기는 도저히 못하겠다는 거였다. 학생회장이 조회대로 올라가 마이크를 잡고 행사의 취지를 설명하고 이끌기로 했었는데 말이다. 곧 3학년 학생회장은 뒤돌아 교실로 들어가 버렸다. 결국 차기 학생회장 박군은 마이크를 잡고 단상으로 뛰어올라갔다.

"여러분, 차기 학생회장 박00입니다."

박군의 목소리는 우렁차게 울렸다. 아이들은 신이나서 크게 환호했다. 우린 침묵시위를 하기로 했는데 말이다. 여기저기서 다시 쉬쉬 거리기 시작했고 아이들은 조용해졌다. 박군은 선동적인 연설을 했다. 한마디 할 때마다 박수와 환호가 터져나왔다. 그는 지난 학생회 선거에서 압도적으로 당선된 스타였고, 무엇보다 대단한 연설가였다. 조용히 하자는 소리는 점점 묻히기 시작했다. 이쯤 진행 되었을 때, 전교조 선생님들 중 학교의 대표이고 또 실제 중앙에서 주요직책을 맡고 있던 화학을 가르치는 이선생님이 단상에 나왔다. 아이들은 마구 환호하기도 하고 선생님을 짜르지 말라고 소리 질렀다.. 이선생님은 그러나 아이들에게 심각하게 화를 내었다. "너희들이 이러는 거 우리들에게 도움이 안된다는 걸 아느냐"는게 요지였다. 우리들은 움찔했다. 그러나 박군은 "우리는 선생님들에게 징계가 되지 않는게 확인 될 때까지 계속 수업거부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물론 많은 아이들은 박군의 의견에 박수를 보냈다. 

이때 나는 점점 화가나기 시작하고 있었다. 침묵시위라는 시위의 방법은 학생 시위와 수업거부가 미칠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화하면서도 우리의 의사를 전달하기위해 주의깊게 선택된 전략이었다. 당시에 여론은 전교조를 불법좌경세력으로 몰아가고 있었기에, 만약 우리가 조금이라도 폭력성을 띠거나 무질서의 모습을 보여주면 그 비난은 다시 고스란히 전교조 교사들에게 돌아가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선생님들을 위해서라는 원래 시위의 취지는 잊은채, 그저 시위하는 재미를 발견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리고 차기 학생회장 박군은 선생님들을 위해 정부나 여론의 눈밖에 심히 벗어나느냐 아니냐를 눈치보는 나와는 다른 명분을 이 시위에 부여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런 박군의 선동력에 따라 아이들은 점점 들썩 거리고,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그 구호는 낄낄거리는 웃음을 담은 "시험거부! 시험거부!" 라는 산발적인 외침에까지 변해갔다. 우리는 곧 기말고사를 앞두고 있었던 것이다. 시험거부라는 외침은, 아무런 명분도 없이 그저 시험보고 싶지 않은 아이들의 이기적인 바램에 불과했다. 시위하는 아이들은 광장에 모인 군중의 힘을 점점 느끼고 잇었다. 간혹 소식을 듣고 달려온 몇몇 놀란 학부모들이 대열에서 자기 아이를 끌어내서 집으로 데려가기도 하고, 교장선생님의 삿대질과 외침, 학생주임이 막대기를 들고 설치는 와중에서도 아이들은 자신들에게 힘이 주어진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나는 모든게 역겨워 졌다. 게다가 전교조 이선생님이 거의 눈물을 흘리다 시피 그만하기를 종용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침묵시위이던 아니던 학생들의 집단행동은 전교조의 대외적 이미지에는 그야말로 치명적일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선생님들이 우리를 원망하기 보다는 기특하다고 여긴 것은 맞지만 말이다. 비를 맞으며 눈물을 흘리며 꿇어 앉아있던 시위대열이 손을 내지르고 환호를 지르며 낄낄대는 'Mob'으로 변해가고 있는데 참을 수 없던 나는, '침묵 시위 해야합니다'를 몇번 소용없이 외친 후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는 군중을 확인하고, 우리반 아이들에게 말했다. "얘들아, 들어가자"

우리반 아이들 중 이 시위가 너무 즐거운 열 대명 가량의 아이들은 남아있었지만, 나머지는 다시 나를 따라 교실로 들어왔다. 교실에서 반장인 정양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정양은 그러자, 아직 운동장에 아이들이 남아 있다면 자기는 지금 나가서 그 아이들과 같이 있겠다고 거꾸로 운동장으로 나갔다. 그 당시엔 정양의 사고방식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었지만, 지금에는 정양이 자신의 임무를 학급 아이들의 보호를 최선으로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수업 안하고 운동장에서 소리지르고 있는게 즐거워 남아있는 평소에 까불까불하던 오양 류의 아이들이 하는 꼴을 지켜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반장인 정양과 선동가인 나 중에 누가 더 이타적인 사람이고 누가 더 자기 이상에 몰입되어 있는 사람인지에 대한 판단은 독자에게 맡기련다.  

차기학생회가 대표성을 가지고 이끄는 학생 시위와 수업거부는 이튿날에도 그 다음 날에도 계속되었다. 물론 내 동생은 나와 달리 의무가 있었기에 여전히 시위에 참가하고 있었다. 시위 참가자의 숫자는 조금씩 줄었지만 그러나 여전히 1,2학년의 50% 가량의 아이들은 계속 참여하고 있었다. 학교에서는 압박용으로 수업을 계속하면서 자리에 없는 아이들의 출석을 체크하고 결시처리 하겠다고 했다. 실제로 출석체크를 하려는 선생님은 거의 없었는데 (삼분의 일은 파업중이라 수업이 되지 않았고, 나머지 선생님들도 아이들에게 잔인하게 하지 못해서였다. ) 나이 지긋하신 영어 선생님이 들어오셔서는 출석을 체크하겠다고 하셨다. 영어 선생님은 무서운 분은 아니었지만 지루하고 심드렁한 그런 분이었다. 영어 선생님이 출석을 부르기 시작하자, 나는 교실 앞으로 뛰어가서 선생님 앞에서 출석부를 낚아 채버렸다. "선생님, 저희들보고 친구들을 배신하란 말인가요? 선생님으로서 그렇게 가르치실 건가요? 그렇다면 차라리 저희 다 결시 처리하십시요. 저희 다시 나가겠습니다. 얘들아 나가자!". 아이들은 출석부를 옆구리에 끼고 복도로 나가는 나를 좇아서 다시 우르르 몰려 나오고 있었다. 당황한 영어 선생님은 헐레벌떡 쫓아 와서는 내게 "잘못했다. 출석 안부를께. 교실로 들어가자"며  간곡하게 부탁했다. 나는 다시 멈춰서 아이들과 교실로 들어갔고 대신 출석부는 여전히 옆구리에 끼고 수업을 했다.

시위와 수업거부는 멈추지 않고 계속되었고, 결국 주말을 맞은 학교는 그 사이에 휴교조치를 취했다. 기말고사는 개학이후로 미뤄졌고, 학생들이 진입하지 못하게 전경들의 닭장차 세대 정도가 교문을 막아 버렸다. 당시 학생 시위로 휴교를 당한 학교가 서울시내에 몇군데 더 있었기에, 우리학교는 뉴스를 타는 영광은 아주 작게만 누렸을 뿐이다. 구로구 쪽에 고등학교는 훨씬 강렬하게 시위를 했는데, 나중에 대학교에서 그 학교 출신을 같은 과에서 몇명이나 만나는 통에 잠시 추억을 교환하기도 했었다. 그렇게 방학은 시작되었고, 선생님들의 앞날은 여전히 불투명한 상태로 우리는 긴 여름을 맞이했다.

(3편은: 선동의 추억 (3))


by Rudy | 2008/05/11 03:45 | About Rudy | 트랙백 | 핑백(2)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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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편은: 선동의 추억 (1)2편은: 선동의 추억 (2)여름방학이 끝난 후 기말고사와 함께 2학기가 시작되었다. 아무리 학교를 뒤흔들만한 시위를 했어도 학생들에게 여름방학은 '신나는 여름방학'이었지만, 전교조 ... more

Linked at Soul Food : 선동의 .. at 2008/05/15 04:27

... 는 어떤 것들이 들어있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이렇게 결정된 차기 학생회는 아직 2학기를 맞아 임기를 시작도 하기 전에 엄청난 일을 감당하게 된다.... (2편은: 선동의 추억 (2)) (3편은: 선동의 추억 (2)) nbsp; ... more

Commented by ellouin at 2008/05/11 04:18
링크신고합니다.^^
Commented by Rudy at 2008/05/11 05:21
ellouin// 3편까지 있을 예정입니다. ^^
Commented by jeff at 2008/05/11 07:12
잘 읽고 있습니다 ^^
Commented by Rudy at 2008/05/11 10:24
jeff// 땡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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