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동의 추억 (3)


1편은: 선동의 추억 (1)
2편은: 선동의 추억 (2)

여름방학이 끝난 후 기말고사와 함께 2학기가 시작되었다. 아무리 학교를 뒤흔들만한 시위를 했어도 학생들에게 여름방학은 '신나는 여름방학'이었지만, 전교조 가입교사들, 파업 교사들의 처지는 폭풍을 맞아 이리로 저리로 떠밀리는 악몽같은 시간들이었다. 전원 해임 파면을 한다는 정부의 협박은 나중에는 탈퇴 각서를 쓰면 선처해 준다는 비열한 회유책으로 변했다. 실제로 한 가정의 가장이 해직된다는 것은 얼마나 무서운가? 탈퇴 각서 종용에 대해 우리 학교의 선생님들은 각자 개인적인 선택을 존중하기로 결정했다. 많은 선생님들은 탈퇴 각서를 제출했다. 

2학기가 시작되었지만 징계문제는 이미 정리가 끝나 있는 것이 아니라 이제 겨우 시작인 그런 상태였다. 서너 명의 선생님들은 이미 전보 처리 되었다. 나의 담임 선생님을 포함한 탈퇴 각서를 제출한 선생님들은 같은 식으로 전보 처리 될 수도 있고 남을 수도 있는 그런 불분명한 상태였다. 중앙에서 직책을 가지고 활동하시는 몇몇 선생님들은 탈퇴 각서를 쓰지 않았을 뿐 아니라, 어차피 중징계를 면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 분들은 징계에 반발하면서 시간을 끌고 계셨기에 아직 학교에 나오고 계셨다.

그런데 나를 충격에 빠트린 건 우리에게 지구과학을 가르치던 송선생님이 방학동안 해직되었다는 거였다. 송선생님은 젊은 유부남 선생님이었는데, 정치적 발언을 전혀 하지 않으시고 성격이 조용하신 분이었다. 선생님이 얌전하고 순하면 아이들이 산만해지기 쉬운데, 이 선생님은 조용하지만 아주 잘 짜여진 수업을 진행하셔서 지구과학이라는 재미있을리 없는 과목을 아이들이 꽤나 집중해서 잘 배우고 있었다. 다른 선생님들 처럼 지루함을 달래는 이야기 보따리를 푸는 일도 거의 없던 분인데 한 번인가 무슨 맥락인지 자기가 왜 보신탕을 안먹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하셨다. 어릴 때 너무너무 사랑하던 강아지가 있었는데, 그 강아지를 잃어버리고 나서 너무 슬퍼한 나머지, 혹시 그 강아지를 요리한 음식이 나올까봐 보신탕을 먹을 수가 없었다는 거였다. 그렇지만 자꾸 동료들이 회식으로 보신탕을 먹으러 가자고 해서, 한 번은 따라가서 국물이나 한 번 떠먹어 볼까 했는데 갑자기 국물 사이에 강아지 눈깔 같은게 보여서 으아아악 하며 더 이상 먹을 수가 없었다는 거였다. (지금은 보신탕에 강아지 눈깔이 있을리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이 이야기는 내가 보신탕을 안먹는 결정적인 이유가 된 듯 하다..) 그렇게 송선생님은 무척 여리고 순수한 사람이었다. 송선생님은 전교조의 주동세력도 아니었고 단지 전교조의 취지에 공감했던 건데, 순수한 원칙주의자이기에 탈퇴 각서라는 정부의 치사한 접근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따라서 탈퇴 각서를 내지도 않았고 징계에 맞서지도 않아서, 탈퇴 각서를 쓰지 않으면 해임시킨다는 정부의 방침대로 제깍 해임되어 버린 것이다. 

다른 두세명의 선생님들이 나중에 파면과 해임을 당했는데, 이 선생님들은 학기 중에 징계를 맞기도 했고 또 평소에 아이들에게 시대비판으로 인기도 끌어온 터라 꽤나 요란하게 학교를 떠났다. 시위하는 우리들을 나무라시던, 중앙의 직책을 맡았던 화학담당 이선생님은 약간 엄한 편이면서 확신에 찬 어조로 정치적 이야기들을 하시곤 했고 따라서 따르는 아이들도 많았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이선생님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 분이 파면되고 떠나던 날 꽃다발을 가져다 드리고 울음을 터뜨렸다. 제일 마지막으로 해직 당한 국어 선생님이 떠나는 날에는 개인적인 친분이 없었음에도 또 교문에 까지 나가서 울며 배웅했다. 솔직히 나는 교사들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고 교사들에게 대한 기준이 까탈스러운 편이었다. 물론 학교에서 전교조에 가입하신 교사들은 그렇지 않은 교사들과 비교해서 훨씬 좋은 선생님들이었다. 전교조 교사들 중에 주로 과학을 가르치시는 분들은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열린 수업으로 학교 내외로 유명한 분들도 많았는데, 나는 그 분들이 아이들이 열린 수업을 할 수준이 안된다며 신경질을 내는 모습을 본다든지 뭔가 하나라도 꼬투리가 잡힌 경우엔 절대로 용서하지 않고 마음속에서 엑스를 그어 버리곤 했다. 심지어 우리반 아이들이 다 존경하는 담임선생님에 대해서도 한 두번 신경질적인 모습을 보았다는 이유로 마음을 다 주지 않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런 선생님들이 학교에서 잘리는 게 너무너무 슬펐다. 내 눈물은 개인적인 친분에서 나온것이 아니라 뭔가 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울분이었을까?

해임된 교사들의 후임으로 대기발령 중이던 교사들이 임용되었다. 나는 그 교사들이 너무너무 미웠다. 특히 송선생님을 대신해서 대학을 졸업한지 얼마 되지 않은 한 여자 선생님이-지선생님- 임용이 되었는데, 이 선생님은 머리는 밝게 염색이 되어있고 화장은 진하고 복장은 화려한 날나리 선생님이어서 첫 인상부터 좋지가 않았다. 또 한번 나는 새로 임용된 교사들의 수업에 대한 소극적 수업거부를 해야한다고 선동했다. 수업거부 방침은 학생회를 통해 또 전교생에게 선전되었다. 우리는 선생님이 들어오시던 말던 다 책상에 업드려 있었다. 지선생님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선생님, 개인적인 감정은 없는데, 저희는 해직당한 선생님에 대한 예의로 선생님을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저희는 수업을 하지 않겠습니다." 지선생님은 그저 1시간을 때우시는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몇날을 우리는 수업거부를 했는데, 지선생님은 회유도 하고 그만하라고 화도 내시고 내가 무슨 죄냐고 한탄도 하시고 그저 무시하고 진도도 나가보기도 하고, 그러는 와중에 아이들은 선생님에게 미안해지면서 점점 수업을 듣게 되었다. 물론 나는 끝까지 고집을 피웠지만 말이다.

2학기는 또한 동생의 학생회가 임기를 시작한 때이기도 했다. 선생님들의 징계와 관련한 이슈나 그때그때 당면한 이슈에 대해 학생회는 늘 선전하고 선동하고 뭔가를 조직하곤 했다. 새벽같이 등교해서 각 교실 책상 서랍에 전단지 넣어두기, 화장실에 대자보 붙이기 등등 다양한 방법들이 동원되었다. 그러나 동생의 학생회는 잘 노는 일에도 일가견이 있는 학생회였다. 학생회는 학교 축제를 다양한 아이디어들로 한단계 업그레이드를 했다. 제일 의미있었던 것은 음악 경연대회를 처음으로 개최해서 학생들이 노래나 밴드나 악기연주 등의 음악 장기자랑을 하고 시상을 하는 학교의 전통 행사를 만든 것이었다. 강당이 없는 학교인지라 커다란 트럭을 두대를 붙이고 그 위에 나무판을 깔아서 무대를 만드는 등, 자질구레한 부분까지 학생회의 창의력과 조직력을 즐겁게 발휘했다.

전교조 선생님들은 학생회 아이들이 기특하다고 이뻐했지만, 다른 소위 "어용" 선생님들에겐 눈에 가시였다. 이중 악질 음악선생님이 있었는데, 학생회들이 뭔가 일을 꾸미거나 잘못하는 것을 찾아내서 혼줄을 내주려고 혈안이 되어있었다. 학생회는 그래서 몇번 이나 음악선생님에게 '발각'이 되었다. 한 번은 일요일엔가 동생과 학생회 임원들이 친목도 다질겸 의논도 할겸 학교 뒷산으로 소주인지 막걸리인지를 들고 가서 주거니 받거니 하는데, 학교에 나와있던 음악선생님이 산을 뒤져서 이들을 찾아낸 거였다. 어떤날은 새벽에 화장실에 대자보를 붙이다가 또 음악 선생님에게 발각이 되기도 했다. 어머니는 이런 일로 가끔 동생때문에 학교에 가서 선생님들을 면담해야 했다. 어머니는 전교조 선생님들을 싫어했고 동생의 학생회 및 풍물반 활동을 싫어했기에 잔소리를 많이 하시긴 하셨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들이 큰일날 일을 한다고도 생각지는 않으셨다. 동생의 문제로 학교 선생님을 찾아가 죄송하다고 사과는 하셨지만 그렇다고 징계를 하지 말아 달라고 빌어야 할 상황은 오지 않았다. 동생은 그 학년에서 공부를 제일 잘하는 여학생이었고 동생보다 공부를 더 잘하는 남학생도 한두명 정도 밖에는 없었다. 명문대 합격률을 신경쓰는 선생님들은 이 모든 불미스러운 일에도 성적이 떨어지지 않는 동생을 학교에서 쫓아내기는 커녕 징계 기록을 남길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덕분에 다른 학생들도 적당히 설교만 듣는 정도로 이 일들을 무마할 수 했다. 나중에 동생의 학생회 임기가 끝난 후에 독립적으로 대자보를 붙이다가 발각된 다른 여학생들이 거의 학교를 쫓겨날 뻔 하게 되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선생님들이 어떻게 아이들을 차별하는지 확인했다.

동생의 학생회 임원들 대부분과 학생회장 박군은 제대로 사상학습까지 열심히 하는 고교 운동권이었다. 박군은 학생운동에 열심인 대학생 형들을 두고 있었고, 다른 학생회 임원들은 뭔가 조직에 속해있었다. 학생회는 당면한 일들을 의논하기도 했지만, 책을 읽고 토론하는 일도 열심히 했다. 해직된 근방의 몇몇 학교 선생님들이 동네에 서점을 하나 차리셨는데, 그 서점에는 책장 뒤에 숨겨진 비밀방이 있었다. 이 비밀방에서 학생회는 누군가에게 들킬 염려없이 모임을 하고는 했다. 그런데 나는 그날의 침묵시위 사건 이후로 이 운동이라는 것에 대한 어떤 불신이 생겼다. 광장의 힘을 맛본 군중은 애초에 타락하게 마련이라는 것을 눈으로 생생하게 목격한 것이다. 학생회가 지향하는 사회주의 혁명은 이런 군중의 힘을 에너지로 사용해서 이상을 이루겠다는 건데, 사회주의 혁명이 아무리 고고한 이상이라고 한들, 선천적으로 타락을 피할 수 없는 군중의 에너지를 사용한다는 건 내게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한계였다. 나의 이런 삐딱한 관점은 동생에게도 당연히 전해졌고 동생은 사상적으로 다른 학생회 임원들과 조금 거리를 두었다. 동생은 친구들이 자기를 "중도파"로 부른다며 씁쓸하게 농담을 하고는 했는데, 이후로 학생회가 좀더 과격한 선동을 하려고 할 때마다 동생은 그걸 적당히 말리는 역할을 도맡게 되었다. 그렇지만 나와 동생은 우리가 그래도 "중도좌파"쯤은 되길 바랬고, 학생회 친구들에 대한 나름대로의 존경심을 유지하고 있었다. 학교를 짤리는 일을 당할 위험이 있어도 옳다고 믿는 것을 위해 행동하는 그런 아이들을 다른 겁장이들과 비교할 수 없었던 것이다. 당시 우리들에게 공공의 적 중에 하나는 동생 학년의 용식이라는 남학생이었는데, 이 학생은 선생님들한테 늘 아부하고 학생회의 수상한 행동들을 일러바치곤 했다. 그 남학생의 별명은 곧 '어용식', '프락치'가 되었고, 우리는 그녀석이 미워 죽었다. 이 남학생은 결국 일부러 다음해의 학생회장후보로 출마해서 학생회장이 되고 말았다. 용식이의 학생회 시절에 동생의 운동권 그룹은 뭐하나 움직거리려고만 해도 무지하게 투쟁해야 했다. 동생은 용식이를 찾아가 키 큰 용식이에게 고개를 꽂꽂이 들고 따지곤 했는데, 이상하게도 용식이는 동생에게 꼼짝을 못했다. 사실 용식이는 학생의 본분이라던지 부모님이 가르치는 보수주의에 경도된 앞뒤가 답답한 친구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전혀 악질은 아니었고, 원칙을 들어 따져대는 동생의 요구를 조금씩은 들어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그리고 동생도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우리학교는 그렇게 뭔가 이슈를 만들어 이것저것 학교에 분란을 일으키는 운동권 학생들로 인해 심심치 않은 시절을 보냈다. 학생회장 후보 성적제한 철폐를 위한 종이비행기 데모를 통해, 학생회장 후보 성적제한을 철폐해주는 것으로 동생은 후배들에게 어용 용식이 같은 아이가 아닌 괜찮은 학생회장을 물려주고는 졸업을 했다. 그 이후로도 남아있는 동아리들과 선생님들로 인해 고교운동권의 명맥이 얼마동안은 유지되었던 걸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등장했던 인물들의 고등학교 시절 이후의 삶은 어떻게 되었을까?

동생은 3학년에도 여전히 좋은 성적을 유지했지만 결국 선지원제도 대학시험에서 낙방하고 말았다. 어머니는 고등학교시절 학생회며 동아리 활동 탓을 많이 하셨고 동생은 풀이 많이 죽었다. 재수생활을 거친후에도 동생은 원하는 명문대에 입학하지 못했는데, 그 동안 동생은 진지하고 똘방한 짧은 머리 운동권 여학생에서 긴생머리 미니스커트 보라색립스틱의 멋부리는 여대생으로 대변신을 하고야 말았다. 대학교에서 운동권은 근처도 가지 않았을 뿐더러, 학교공부-남자친구-나이트가서 놀기의 삼박자 이상으로는 절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아이가 되어버렸다. 어머니는 고등학교시절의 동생이 못마땅한 만큼이나, 새벽3시에 귀가하는 동생때문에 속을 끓이셔야 했다. 물론 지금 동생은 얌전한 아이엄마가 되었지만...

학생회장 박군은 동생과 같은 대학교를 다녔는데, 여전히 열렬한 PD계열 운동권으로 명성을 날렸다. 동생은 학교에서 박군과 가끔 마주치곤 했는데, 당시 대학생 패션에서도 한참 첨단을 더 나가는 학교에서도 나름대로 유명세를 떨쳤던 동생을 바라보며 과연 박군은 무슨 생각을 했으려나.

어용 용식이는 예상대로 명문대에 입학을 해서는 3년만에 조기졸업을 하고 유학을 가버렸다. 그 후로 소식을 듣지는 못했는데, 전공이 공부는 어렵고 취직은 안되는 과목이다 보니, 과연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궁금할 뿐이다. 혹은 일찍 유학을 간 탓에 군대를 피하느라 영영 한국에는 돌아오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송선생님은 거의 10년이나 흘러서 복직이 되셨다. 가끔 캠퍼스에는 전교조 해직교사 복직을 촉구하는 게시물이 붙어있곤 했는데, 그때마다 나는 송선생님의 이름을 확인하고는 가슴이 아팠다. 송선생님은 복직되기 전까지 학원에서 가르치셨다고 간신히 수소문해서 들을 수 있었다. 어찌어찌 전교조의 윗선에까지 문의를 해서 송선생님의 복직을 확인하고서야 나는 그동안 가슴한켠에 묵직하게 남아있던 걱정을 덜 수 있었다.

다른 전교조 선생님들은 합법화가 될 때까지 계속 열심히 활동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나는 그 선생님들을 찾아뵙거나 하는 것을 전혀 하지 않았다. 전교조는 합법화가 되었지만 이미지 메이킹에서 여전히 성공적이지 않고 꼴통이나 이상한 선생님들도 끌어않고 가고 있지만, 그 안에는 아이들에게 정성을 다하는 멋진 선생님들이 여전히 많이 있다는 것을 여러번 확인할 기회가 있었다.    

악질 음악선생님은 우리가 모두 졸업한 이후에 수업시간에 어떤 아이에게 인격적으로 심히 모욕을 주며 때리다가, 화난 그 남학생이 되려 선생님에게 주먹을 날리는 사건이 있었다. 음악선생님은 그렇게 일종의 망신을 당했는데, 그 남학생은 결국 학교를 쫓겨났지만 음악선생님도 그 이후로는 조심한다고 전해 들었다.

결국 세월이 오래 흘러 대부분의 학생들은 제갈길을 가고 선생님들도 회복이 되었지만, 그렇지 못한 아이들이 있었다. 학생회 임원이나 학교의 운동권 동아리 아이들 중에는 혁명의 사상에 심취해서 대학을 포기하고 바로 공장으로 취직해서 노동운동 등에 뛰어든 아이들이 몇명 있었던 것이다. 묘하게도 이 아이들은 모두 여학생이었다. 물론 당시에 대학의 문은 더 좁았고, 나의 친한 친구같은 경우에는 대학가기도 어려운 겸, 겸사겸사 인맥에 엮여 빈민운동으로 뛰어들어서 그렇게 인생의 방향을 잡은 경우도 있었지만, 동생의 두어명의 친구들은 상당히 똘똘한 아이들이었지만 대학을 기꺼이 포기했다. 안타깝게도 그 중 한 아이는 졸업한지 3-4년이 지나지 않아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나의 고등학교 시절은 많은 당시의 당사자들에게 엄청난 격변기였다. 한동안 나는 그 격변기가 남긴 감정에 몰두해서 누구는 미워하고 누구는 동정하고 선한편과 악한편이 분명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의 삶의 궤적은 단순한 기준들로 분류되는 것이 아닌 하나하나가 특별한 자취라는 생각이 든다. 그 특별함을 경험할 수 있었던 것이 소중하다는 것, 그 이상으로도 그 이하로도 더이상 평가하지 않게된 것은 많은 사람과 많은 일을 겪은 나이 먹은 사람의 어쩔 수 없는 평온함인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by Rudy | 2008/05/15 04:13 | About Rudy | 트랙백 | 핑백(2)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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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ked at Soul Food : 선동의 .. at 2008/05/15 04:25

... 과에서 몇명이나 만나는 통에 잠시 추억을 교환하기도 했었다. 그렇게 방학은 시작되었고, 선생님들의 앞날은 여전히 불투명한 상태로 우리는 긴 여름을 맞이했다. (3편은: 선동의 추억 (3)) ... more

Linked at Soul Food : 선동의 .. at 2008/05/15 04:27

... 수 없다. 그러나 이렇게 결정된 차기 학생회는 아직 2학기를 맞아 임기를 시작도 하기 전에 엄청난 일을 감당하게 된다.... (2편은: 선동의 추억 (2)) (3편은: 선동의 추억 (2)) nbsp; ... more

Commented by 레오펠릭스 at 2008/07/08 23:50
굉장히 흥미롭게 봤습니다.

좋은 경험 공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Rudy at 2008/07/09 12:32
레오펠릭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즘 집회하는 청소년들 보면 남 일 같지 않은 면이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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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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